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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화 그린북 본 감상

《그린북》을 본 날,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어요. 마음 어딘가가 조용히 흔들리는 느낌이랄까요. 처음에는 그냥 ‘인종차별을 다룬 도로 무비겠지’ 했는데,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섬세한 이야기였어요.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, 그 자체가 감동이었어요.

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만남

토니 발레롱가. 뉴욕 브롱크스에서 살아온 백인 이탈리아계 운전기사. 거칠고 직선적이며, 세상의 방식에 익숙한 사람. 그리고 닥터 돈 셜리. 흑인 클래식 피아니스트이자, 매우 지적이고 고상한 삶을 살아온 인물. 이 둘이 함께 미국 남부를 여행하는 설정만으로도 이미 긴장감이 느껴졌어요.

 

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, 그 긴장감이 서서히 유머로, 따뜻함으로 바뀌는 과정이 정말 멋졌어요. 초반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, 말투 하나에도 어색함이 묻어났지만, 시간이 지날수록 그 어색함마저 정이 되는 순간이 계속 찾아오더라고요.

눈물 없이 보기 어려웠던 순간들

영화 속 가장 가슴 아팠던 장면은, 돈 셜리가 연주하러 간 저택에서 "당신은 이 집 안의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"는 말을 들었을 때였어요. 그는 그 집을 위해, 그 사람들을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러 왔는데, 정작 한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것, 그 현실은 말 그대로 씁쓸했어요.

 

토니가 그 상황을 보고 참지 못하고 싸우는 장면에서는, 처음에는 그저 '일자리'로 시작했던 그가 점점 사람 대 사람으로서 분노하고 행동하게 되는 변화가 보여서 더 감동적이었고요.

음식, 편지, 그리고 우정

토니가 돈에게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처음 먹여주던 장면은 영화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면서도, 이 둘의 관계가 _‘고용인과 고용주’_가 아니라 친구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 같았어요. 또, 토니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를 돈이 다듬어주는 장면은… 정말 예뻤어요. 그건 그냥 편지 그 이상이었어요. 서로의 언어로, 서로를 표현하고 도와주는 방식이었으니까요.

 

마지막에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 자리에 돈이 혼자 있게 될까 봐 걱정하던 토니의 모습, 그리고 결국 돈이 토니의 집에 도착했을 때의 그 조용한 감동은… 참 따뜻했어요. 거창한 말이나 음악 없이도, 그 장면 하나로 모든 이야기가 정리되는 느낌이었어요.


서로의 세상을 이해하는 법

《그린북》은 사랑, 용기, 변화 같은 단어보다 더 중요한 걸 보여줘요. 바로 이해와 공감이에요. 우리는 서로 다르고, 자란 환경도, 생각도, 취향도 다르지만, 결국 사람은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걸 영화는 계속 말해줘요.

 

특히 이런 대사가 마음에 오래 남았어요.

"당신은 백인들 세계에선 흑인이고, 흑인들 세계에선 백인이다. 그런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해."

 

돈 셜리의 고백은, 단순히 인종 문제를 넘어서,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의 외로움을 담고 있어요. 그래서인지, 그의 피아노 연주가 더 슬프게 들렸던 것 같아요.


생각보다 훨씬 묵직한, 그리고 따뜻한 영화

《그린북》은 한 편의 영화이자,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보여주는 작은 교과서 같았어요. 편견 없이 바라보는 눈, 조용히 귀 기울이는 자세, 그리고 마음을 열기까지의 거리. 이 모든 걸, 웃음과 눈물 사이에서 조용히 가르쳐주더라고요.

끝나고 나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.


세상엔 나와 다른 사람이 정말 많지만, 그렇다고 해서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.


때로는 그 사람 옆자리에 앉아, 같은 음악을 듣고, 같은 음식을 나누는 것만으로도, 우리는 _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다_는 걸요.